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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원포인트 꽁트

원포인트 꽁트7-원점





원점


그와 그녀는 길을 떠났다.
길 끝에 기다리고 있을 원점을 찾아서.

그녀가 그를 처음 찾아갔을 때,
그는 둥지에 없었다.
둥지에서 그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그녀를 보며 말했다.

“그에게 뭔가를 바라고 왔다면 그것은 헛수고야. 그는 아무에게도 원하는 바를 들어주지 않아. 단지 그가 하고 싶은 일만을 할 뿐이지.”
“그가 대륙의 모든 길 위에서 존재를 알렸다는 사람이 맞나요?”
“그래.”
“그렇다면 됐어요.”

사람들은 그녀를 이상하게 보았지만, 그녀는 조금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녀는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이곳에 왔다.
그에게 다른 이들이 바라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유로.

대륙공로라는 길이 있다.
대륙의 극점에서 극점을 잇는 길로 남서의 끝에서 북동의 끝을 가로지르는 대각선의 길이다. 모두가 그 길을 이용하지만 아무도 북동의 끝, 극한의 끝까지 가본 자는 없다.
그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무도 모른다.

그녀는 그곳에 ‘원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 대륙공로의 북동 끝에 대해 들었던 그 순간부터 그곳에 모든 것의 시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금은도, 절세의 미남도, 화려한 옷과 저택, 권력의 썩은 향기가 그녀를 유혹했지만 그녀에게 그것들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오직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원점만이 그녀에게 인생의 유일한 의미였다.

하지만 아무도 가본 적이 없기에,
아무도 가는 길을 알지 못했다.
오직 단 하나.
이 대륙의 모든 길 위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는 그를 제외한다면.

그 말은 그가 모든 길을 가 보았다는 뜻이며,
대륙공로의 극단에도 다다랐다는 뜻이다.

어둠이 기다리고 있는 숲 속으로 그녀는 겁도 없이 뛰어들었다.
어차피 원점에 다다르지 못했던 그때까지의 생은 그녀에게 헛것이었으며,
마침내 다다를 수 있다면 생을 살라도 좋았다.

마침내 어둠의 숲, 깊숙한 곳에 다다랐을 때 그녀는 그를 마주했다.
그는 찢겨진 마수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의 눈을 본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이 자는 ‘원점’을 이미 보고 온 자다.
이미 목표를 이루었고, 더 이상 다른 목표가 없어 길 위를 떠도는 자다.
그의 생에는 더 이상 원점이, 시작점이, 시원점이 아무 의미도 아니다.

강렬한 질투심을 느꼈다.
동시에 극한의 경쾌함을 느꼈다.
그가 갔다면,
그녀도 갈 수 있다.

“당신이 세상의 모든 길을 알고 있는 자인가요?”

세상의 극점에 다다랐던 자, 그가 고개를 돌렸다.
그는 이미 길의 끝에 다다랐다. 모든 길을 떠돌았으며, 모든 목표를 밟았다.
이미 원점에 다다라 정체를 꿰뚫어버린 그에게 남은 목표는 없다.
그렇기에 그의 심상은 평온하되 적막하며,
그의 눈동자는 심상을 반영해 아무런 파랑이 일지 않는다.

이미 원점에 다다라 목표를 잃은 그에게 그녀가 말했다.
“당신은 대륙의 끝에서 끝까지, 가보지 않은 길이 없고 모르는 길이 없다고 들었어요. 심지어 대륙공로의 극단, 시원점까지도. 내게 그 길을 알려주세요.”

그가 물었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그녀는 답했다.
“당신에게 남은 것은 길을 걷는 것 뿐이니까요.”

이미 원점에 다다랐던 자는,
그 순간 깨달았다.
아직 그에게 남아있는 것이 있다.

원점은 시작점. 그렇기에 그곳은 시원점이다.
시원점은 시작한다는 뜻이지 끝이 아니다.
그곳에서부터 모든 길은 시작되며, 그 시작점을 밟은 자는 거기서부터 모든 길을 밟아 나갈 수 있다.

아직,
그는 시원점에서부터 다시 길을 걸어본 적이 없다.

그와 그녀는 길을 떠났다.
길 끝에서 기다리고 있을, 다시 시작할 지점,

시원점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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