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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원포인트 꽁트7-원점 원점 그와 그녀는 길을 떠났다.길 끝에 기다리고 있을 원점을 찾아서. 그녀가 그를 처음 찾아갔을 때,그는 둥지에 없었다.둥지에서 그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그녀를 보며 말했다. “그에게 뭔가를 바라고 왔다면 그것은 헛수고야. 그는 아무에게도 원하는 바를 들어주지 않아. 단지 그가 하고 싶은 일만을 할 뿐이지.”“그가 대륙의 모든 길 위에서 존재를 알렸다는 사람이 맞나요?”“그래.”“그렇다면 됐어요.” 사람들은 그녀를 이상하게 보았지만, 그녀는 조금도 이상할 게 없었다.그녀는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이곳에 왔다.그에게 다른 이들이 바라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유로. 대륙공로라는 길이 있다.대륙의 극점에서 극점을 잇는 길로 남서의 끝에서 북동의 끝을 가로지르는 대각선의 길이다. 모두가 그 길을 이용하지만 아무.. 더보기
원포인트 꽁트6-달리기 그는 달린다. 그의 등은 꼿꼿하다. 아무에게도 굴복하지 않을 것처럼 거만하고 누구에게든 굽힐 수 있을 것처럼 유연하다. 아무 표정 없는 등이지만 어떤 얼굴보다도 그 등은 선뜩한 감정을 뿜어낸다.달리는 이 순간, 그는 이 길 위의 지배자다. 길 위를 그가 달리기 시작한 것은 이 길이 황량한 개천길이었을 때부터의 일이다. 개천길 근처로 이사를 온 그는 이사 당일에 비가 오면 개천길이 흙탕길로 변해버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묘하게도 그 해에는 비가 자주 왔고, 아침마다 그는 흙탕길과 전쟁을 벌이며 길을 나서야 했다. 아스팔트 장벽과 죽어가는 잔디가 흙탕으로 범벅이 되어 엉망진창인 길을 그는 거의 뛰다시피 벗어나야 했고, 간신히 길 끝을 벗어나면 헐떡이며 길을 되돌아보곤 했다.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비가.. 더보기
원포인트 꽁트5-패스파인더 사진 출처 : https://www.flickr.com/photos/don-stewart/2369281599/ (Don Stewart) 패스파인더 ‘문’을 통과했을 때, 그는 눈앞에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 것을 보았다.-캬아아!밀어닥치는 것은 천공을 뒤덮은 거대한 은백의 신수.한 마리 용.하지만 그는 공격해오는 자를 용서한 적이 없다.용이라 하더라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용을 벴다. 쓰러진 용을 보며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두 개의 달이 지켜보는 하늘 아래서. 한 개의 달이 뜨는 세상에서 온 그는,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산에 둥지를 틀었다.갈 곳은 없어도 할 일은 많았다. 집을 짓고, 먹을 것을 찾고, 요리를 하며, 일생에 본 적이 없는 광경과 신기한 마수를 참하며 아.. 더보기
4. 촌스러움 촌스러움 그는 고속열차를 탔다. 고속열차에서는 지역광고를 한다. 그 중에는 지역 향토 브랜드, 고려안을 홍보하는 광고가 있다.그가 생에서 본 두 번째로 촌스러운 광고다. 그가 그 지역이나 브랜드에 악의를 갖고 있었던 게 아니다.단지 그 광고는 그가 넋을 잃고 바라볼 단순성과 세련됨이 전혀 없었을 뿐이다.이는 미학의 문제다. 지극히 촌스럽다.아주 숨막힐 정도로.마치 ‘가짜’처럼. 그 지역에서 돈을 많이 썼는지 고속열차를 탈 때마다 그는 그 광고를 보아야 했다.지극히 촌스럽기 그지없는 광고를 보던 그는, 문득 생각했다.그는 이 촌스러운 광고가 용인되는 촌스러운 사회에서 촌스럽게 싸우다가 촌스럽게 죽게 될지도 모른다. 역시 촌스러운 이야기지만,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청운의 꿈을 품은 듯 무슨 소용이 있으며.. 더보기
3. 끈 끈 그는 고속열차를 탔다. 열차는 빠르게 남쪽으로 향했다. 해질녘의 들판과 강이 일직선의 선이 되어 창문을 스치고 지나갔다. 기차를 탈 때마다 보는 광경이지만, 그는 그 기하학적인 무늬에 자주 넋을 잃곤 했다.그 선은 현실의 들판과 강, 기차역과 달리 단순하고, 간명하며, 순수하다.기차를 타기 전까지만 해도 그를 감싸고 있던 모든 세상의 사람과 관계와 일들이 음속을 넘나드는 고속도의 열차 속에서는 아주 단순명료해졌다. 복잡하고 얽혀 있던 만사가 마치 고속의 질주와 함께 갈라져 버리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고속열차도 복잡한 세상의 일부다. 승무원이 지나가는 통에 그가 잠시 시선을 돌렸을 때,고속열차 천장에 달린 화면에서는 지역 브랜드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그 지역에서 돈을 많이 썼는지,탈 때마다 보아야.. 더보기
2. 복수자들 복수자들 이 세계는 잘못되어 있다.하늘은 끝을 모르도록 광막하고 땅은 시야에 보이는 모든 곳이 죽어가는 풀로 가득하다. 끝을 모를 대평원에 남아있는 것은 오직 단 한 사람의 남자 뿐이다.남자는 홀로 땅 위에 누워 망연히 하늘을 본다.「아파! 아파! 아파!」비명이 귓가를 파고든다. 시야는 어지러져 흔들린다. 광대한 세상 속에서 오직 감각만이 남자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만든다.이 세계 속에서 남자는 홀로 버려진 존재다. 13년.이 대초원을 남자가 떠돌았던 시간이며, 그때까지 남자가 가졌던 모든 관계를 버리고 떠나온 시간이다.남자가 세계에서 버려진 이유는, 혹은 버린 이유는 간단하다.진실에 부딪쳤기 때문이다.「아아악! 내 팔! 내 다리!」「네가 어떻게! 날, 날 배신해!」스승이 제자를 죽인다.친우는 형제와.. 더보기
1. 신 https://www.flickr.com/photos/maleny_steve/2187071232/in/photostream/ 신 그날 밤까지, 소년에게 생은 흐리고 모호한 ‘덩어리’에 불과했다. 어느 해 겨울, 소년은 북방 신대륙 행 홍보 잡지를 집어 들었다. 그 전까지 소년은 해외로 나갈 생각도, 비행기를 탈 생각도, 여행을 떠날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그 잡지를 잡은 순간 소년은 그곳으로 날아가고 싶은 생각에 사로잡혔다.오직 그 생각만이 소년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아무것도 명징하지 않은 세상 속에서 그 잡지 속에 그려진 거대한 산맥과 새하얀 눈덩이만은 선명하게 보였다.그곳에 가면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변할 것 같았다. 이후 어떻게 소년이 신대륙으로 떠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중요한 점은 소년의 발이 결국.. 더보기
문학소녀 어느날 갑자기, 글이 그녀를 떠나갔다. 더 이상 그녀는 아무것도 쓸 수 없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처음 만난 것은 봄, 모든 것이 새롭던 그 때였다. 그녀는 처음으로 주어진 자유와 처음 보는 학교, 그리고 처음 보괴 된 사람들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길을 걸을 때마다 새로운 것과 부딪쳤고, 미처 적응하기도 전에 다른 새 것과 맞닥뜨렸다. 처음엔 마냥 신기하고 신날 뿐이었지만, 나중엔 정신이 없어 비명을 지르고만 싶을 지경이었다. 그 날도 그녀는 반은 신나고 반은 비명을 지를 듯한 기분으로 캠퍼스 안을 걷고 있었다. 길에선 벤드 하나가 공연을 신나게 벌이고 수업이 끝난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떠들어댔다. 정신없고, 산만하고, 생각도 못하고, 단지 남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던 .. 더보기